나만의 길을 걷는 것

두려움

개발자로 일을 한지 이제 11개월이 되었다. 긴장감이 끊이질 않았다. 하루를 마감할때 쯤이면 다음 날과 그 주에 해야할 일을 생각해보는 버릇이 생겼다. 뭘 해야할지 정리가 안된 상태에서 일을 시작하는 것이 너무 무서웠기 때문이다. 못하면 어쩌지라는 걱정과 함께. 물론 그렇게 했음에도 예상대로 진행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시간이 지나 두려움은 약간의 익숙함으로 변했고 그 안에서 미래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현재 걷고 있는 길에 대해서도 다시 고민하게 되었다. 아마 많은 직장인들도 이런 고민을 하지 않을까?

가령, 이렇게 해서는 발전이 전혀 안될 것 같은데 어떡한담..?, 지금 이렇게 하고 있는 게 맞는 걸까?, 이대로 가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는 걸까?, 남들은 이만큼 하고있는 것 같은데 나는 그만큼 하고 있는걸까?, 나는 왜 학습 속도가 늘지 않는걸까?, 공부는 많이 한 것 같은데 왜 삶에 변화가 없는 것 같지?, 지금 몸담고 있는 분야 말고 또 어떤 분야를 터득해야 할까?.. 등

모두 나 스스로 해본 질문들이다. 직장인으로 살았던 3년 가까운 시간동안 끊임없이 나를 괴롭힌 질문들이다. 분명 몇개월 전에 답했던 질문 같은데 어느새 또 질문을 되뇌이고 있는 나를 종종 발견한다. 질문의 수만큼 두려움을 느꼈다. 왜 또 떠오르는 질문은 그렇게 많은지. 그간 수많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답하면서, 답하기 위해 책과 신문을 읽고 글을 쓰면서 다행히 두려움과 불안감을 많은 부분 해소했다. 어느 정도 해답을 찾은 것 같아 그간의 고군분투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좋은 질문을 해야 좋은 답을 얻는다

누구도 가지 않은 길,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길 혹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는 길 중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까? 이 문장을 잘 뜯어보면 내 길을 정하는 데 있어 기준은 내 안이 아닌 남들이 어떤 길을 가느냐에 있다. 다시 말해, 이 문장에 답을 하게되면 필연적으로 그 대답은 타율성을 띄게 된다. 내 길을 선택함에 있어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살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론적으로는 내 길을 선택하는데 있어 이 질문은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좋은 질문은 아니다.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군지 이해하고, 내 마음을 따라 정말 하고자 하는, 온전히 열정과 에너지와 시간을 쏟을 수 있는, 큰 보상이 없어도 그걸 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동시에 생계는 해결해줄 수 있는 길을 찾는 것 그리고 그 길을 묵묵히 걷는 것이지 않을까. 어떤 길을 선택하고 그 길을 걷는 이유를 내 안에서 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질문을 바꿔야 한다.

  • 나는 어떤 사람일까?
  • 평생 어떤 일을 하면 아무 후회가 없을까?
  • 나는 무엇에 열정이 있을까?
  • 지금 갖고 있는 관점으로 별로라고 판단했던 많은 것들 중에 다른 관점으로 보면 완전히 다른 판단을 내릴 만한 것들이 있을텐데 그것들은 무엇일까?
  • 나는 나의 취향과 편향에 따라 지금껏 내린 가치판단들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나 자신에 대해 알게 해주는 질문을 많이 던지면 던질 수록 미궁에 빠질 것 같지만 놀랍게도 생각이 훨씬 더 분명해진다. 질문에 하나씩 답하다보면 어느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다른 질문에 대한 답을 선행해야만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것들을 그림으로 그리는 방법 등을 통해 질문들을 연결하고, 얻은 대답들을 모아놓고 구조를 살펴보면 더 전체적인 ‘나’가 보인다.

나만의 보폭

어느 길을 걸을지 정한 뒤 조금 걷다보면 분명히 나아가는 속도에 대해 생각을 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럼 또 아래와 같은 질문 다발을 맞이하게 된다.

  • 모르는게 너무 많은 것 같은데 왜 이 모양이지..?
  • 나는 학습이 좀 느린 것은 아닐까?
  • 이 속도로 가는 건 남들에 비해 좀 느린 건 아닌가?
  • 기반 지식을 넓히면 속도를 개선할 수 있는가? 관련된 책이 있을까?

어떤 질문은 자신을 외부와 비교해보게 하고 어떤 질문은 나에 대해 더 깊이 알아보도록 주문한다. 이 경우에도 앞선 문단과 맥락을 같이 한다. 외부와의 비교를 할때는 참고 수준에서 답을 내리고 나에 대해 이해하도록 만드는 질문을 많이 해야한다. 특히 학습의 속도에 대해 고민할때 남과의 비교는 자신이 최고 반열에 들지 않는 이상 나는 ‘어쨌든 느린’ 사람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백해무익하다. 따라서 ‘저 정도 수준의 사람은 저 속도로 나아가니 나는 이 정도면 적당하겠구나’ 식의 참고까지가 좋을 것이다.

조승연의 ‘공부 기술’, Henry Roediger의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이준영의 ‘구글은 SKY를 모른다’, 학습과 교수법에 관한 희대의 역작인 Ken Bain의 ‘What best college students do’, Angela Duckworth의 ‘GRIT’, Anders Ericsson의 ‘1만 시간의 재발견’ 등 여태 읽은 학습에 관련된 책들을 종합해보면 인간의 학습에는 심적 구조물이 활용된다. 실제로 Anders Ericsson은 그의 저서에서 이를 두고 심적 표상이라는 단어로 표현했는데 가령 이런 것이다.

img_0037
이런 심적 구조물을 3차원으로 머릿속에서 그리거나 이미지와 연결지을 수도 있다. 심지어 이 그룹들에 색을 입혀 기억을 도울 수도 있다. 그림은 아이패드로 그렸다.

단어를 기억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단순히 단어별 의미를 기억하는 방법, 단어가 가진 패턴을 분리해 새로운 단어를 패턴 그룹에 묶어서 기억하는 방법, 주제 및 상황 별로 묶어서 기억하는 방법 등 다양하다.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 구조를 만들고 그 안에서 단어들을 이리저리 옮기는 식의 방법이라면 심적 구조물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마음에 그림을 그리니까 말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외국어 잘하기’라는 목표아래 세부 목표로 단어를 많이 익히기로 했다면 더 좋은 심적 구조물을 갖고 있을 수록 더 빠르고 더 정확히 목표를 이룰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마다 갖고 있는 심적 구조물이 서로 다르고, 가진 갯수도 다르며 각각의 질 또한 다르다는 것이다. 영어 뿐만이 아니라 모든 종류의 학습에서 심적 구조물이 활용된다. 수학, 스포츠, 의학, 과학, 예술, 컴퓨터 공학 등 인간이 하는 모든 종류에 적용된다. 위상 수학에서 새로운 모델을 생각할때, 방사선과 의사들이 엑스선 사진 판독을 할때, 음악가가 선율을 머릿속에서 그릴때, 심지어 연주할때, 엔지니어가 딥러닝 모델 구조를 생각할때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학습의 속도가 걱정이 된다면 문제를 바라볼때 활용하는 내가 가진 심적 구조물을 생각해야 한다. 속도에 영향을 미치는 거의 유일한 변수이기 때문이다(여기서 지능은 의미가 없다. 지능이 낮아서 심적 구조물을 많이 생각해내지 못할 것 같은 걱정이 든다면 1만 시간의 재발견을 꼭 읽을 것을 권한다.). 따라서 내 생각의 방식의 구조와 틈새 그리고 한계를 면밀히 살펴보는 것이 우선이며 그 뒤에 한 단계씩 나아가야 한다. 아마 이렇게 걷는 것부터 ‘나만의 보폭’으로 걷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남보다 늦고 빠르고 또한 별 의미가 없다. 이러한 보폭을 생각하는 일의 궁극적인 목표는 위 문단에서 얻은 나만의 길을 오래도록 걷는 것이기 때문이다. 남보다 더 잘 나가고 빠른 것을 원한다면 이 글은 소용이 없을 것이다.

개발자로서의 나는

글 전체의 흐름은 이어지지만 문단 별로 어느 정도 독립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니 건너 뛰면서 읽으셔도 좋습니다.

Angular로 시작해 지금은 React 위주의 개발을 해오고 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이 분야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이게 나만의 길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양한 배경과 동기에 의해 이 분야를 택했을 것이고 나도 그들 중 하나다. 이 분야에서 왜 일을 하고 있는지, 나에 대한 이해와 개발자로 일하는 것이 서로 어떤 관련이 있는지 묻는다면

  1. 하다보니 너무 재미있고
  2. 재밌어서 더 하다보니 프로그램 자체가 아름다워서 신기하고
  3. 이걸로 해결할 수 있는 사회, 환경, 문화적 문제들이 많다는 걸 깨달았고
  4. 나 혼자만 잘 사는 것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더 멋지고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활용하고 싶고
  5.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인 교육 문제에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현재까지는 이렇게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근본적인 이유를 오랫동안 생각해온 것이기 때문에 아마 거의 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이유에서 이 일을 하고 있다. 단순히 돈을 벌고 커리어를 만들어나가는 관점도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기 때문에 근본적인 이유를 찾아 헤매온 것이다. 그럼 이대로 나아가면 될 것인가?, 이것만 계속 할 것인가? 라는 질문을 해볼 수 있는데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기는 어렵다. 당분간은 맞겠지만 10년, 20년을 생각해보면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다행히 최근 우연히 머신러닝 분야가 위의 다섯가지 이유와 완전히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이쪽 공부를 계속 해오고 있다. Tensorflow나 Keras 같이 ML/DL 모델을 빠르게 프로토타이핑 할 수 있는 걸출한 오픈소스들이 이미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고 이에 따라 굳이 이 분야를 병행하기 위해 반드시 대학원 진학을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계속 해나갈 수 있는 분야라고 판단했다. 앞으로는 블로그에 개발 외에도 모델링이나 수학에 관련된 글들도 많이 올려야할 것 같다. 개발 글도 거의 못쓰고 있는 형국이지만.. 먼산..

나의 이런 판단을 듣고 ‘굳이 프론트와 머신러닝을..?’ 이라는 반응이 더러 있었다. 의기소침할 뻔 했으나 생각해보면 또 안될 이유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요새 페이스북에서 Sung Kim 교수님과 조대협님의 글들을 보면서 많은 용기를 얻고 있다(감사합니다!).

능숙해지기

아직은 개발과 공부에 엄청난 몰입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위에서 나를 이해하네 어쩌네 했어도 남과의 비교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다. 인간이란.. 근래에 탁월함에 관한 어떤 글에서 Kobe Bryant는 자는 시간 6시간을 제외한 거의 모든 시간을 농구를 위해 사용했고, 월마트의 창업자인 Samuel Walton은 억만장자가 되어서도 항상 같은 태도를 유지했다는 내용을 보았다. 그럼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는가? 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그들은 어떤 동기가 있었기에, 어떻게 동기를 계속 유지했기에 그렇게 엄청난 몰입을 했을까? 나는 하루에 자고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시간을 개발과 공부에 쏟을 수 있을까? 나는 그들처럼 몰입할 수 있는 내적 동기를 갖추었는가? 내적 동기는 먼저 나를 이해해야 찾을 수 있는 것인가? 그럼 찾기만 한다면 그 뒤로는 실행과 correction만 남는 것일까? 그들은 그들의 분야에서 어디까지 가고 싶은 걸까? 아마 가고자 하는 목표에 따라 동기를 부여받는 방식과 빈도가 달라지지 않을까?

자신의 분야에 매우 능숙해지고 싶은 사람이 아주 많을 것이다. 잘하게 되면 얻을 수 있는 보상들이 많기 때문이다. 나는 왜 능숙해지고자 하는지 생각하기 전에 보상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생각해보자. 누군가는 자신의 꿈을 더 분명히 이뤄줄 길을 더 잘 보게될 것이고, 누군가는 더 많은 돈, 누군가는 사회적 인지도, 누군가는 기술과 지식 자체를 깊이 이해하고 갖고 노는 것에서 오는 희열감 자체를 원할 수 있다.

책, 페이스북, 링크드인 그리고 주위에서 유명하거나 아주 실력있는, 가히 괴물이라 부를 수 있을만한 사람들을 계속 보다보니 위에서 언급한 내적 동기와 보상은 능숙함의 정도와 무관하지 않음을 알게되었다. 그리는 꿈이 선명할 수록, 원하는 것과 이루고자 하는 것이 분명할 수록 더 많은 집중을 하게 될 거고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할 여지가 크다. 그것은 자연스레 능숙함의 향상으로 이어질 것이다. 무언가에 매우 능숙해지고자 한다면 내적 동기를 찾고 원하는 보상의 형태를 생각하고 그 이미지를 더 선명하게 만들어 보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능숙해질 수 있는 대상은 참 많다. 내가 하고 있는 일, 타인과의 소통과 협업, 대인관계, 가정 꾸리기 등등. 그리고 놀랍게도 이 관계없어 보이는 것들 또한 서로 관련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는 분명 오늘 집중하는 일에 큰 영향을 미친다. 가정을 이루고 안정감과 행복을 느끼고 싶은 마음이 강하다면 가정을 이루는데에 관심이 가기 마련일 것이다. 또 자신이 대인관계와 다양한 분야의 타인과 소통하는 것에서 어려움을 느낀다면 그것 또한 커리어에 있어서의 능숙함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거대하거나 복잡한 서비스의 아키텍쳐를 설계하는 사람, 섬세한 미술 작품을 만드는 사람, 복잡한 의술을 행하는 의사, 연주할 모든 곡들의 흐름과 선율을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그려가며 연주에 몰두하는 피아니스트와 같이 장인이라 부를 수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 중에서도 롱런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위의 능숙해질 수 있는 네다섯가지의 영역 거의 모두 다에서 능숙하다는 점이다. 이 점을 절대 간과할 수 없다. 한번 반짝이고 사라진 장인들은 저 영역 중 한두가지가 아주 부족했다. 대인관계에 아주 서툴다던지,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소통이 잘 안된다던지 등이 이런 경우에 속한다. 이 소통에 관련된 부분은 전에 쓴 이 글에서도 다룬 적이 있다.

따라서 이런 생각을 해볼 수 있다. 아직 또래보다 기술적인 것에서 한참 뒤쳐져 있다고 생각이 든다면 내가 다른 이보다 좀 더 능숙한 영역에서의 장점을 적극 활용해보고, 이런 사고를 바탕으로 꾸준히 성장할 수 있는 장기적인 계획을 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기술적 능숙함은 부족하지만 대인관계 및 네트워킹에서 능숙하고, 지식에 대한 호기심이 남달라 습득 속도가 빠르다면 기술 커뮤니티, 컨퍼런스 등에 적극 참여해 그 사람들과 교류하며 모르던 것을 배우고 함께 공부하거나 혼자 공부할때 조언을 얻을 수 있다. ‘능숙해지기’에 대해서 이와 같은 관점으로 살펴본다면 남과의 비교와 사회적 압박에서 자유로운, 좀 더 안정적인 마음으로 성장 계획을 세우고 나아갈 수 있다.

이에 관련해 Tai Lopez라는 기업가의 블로그에서 도움이 되는 몇가지 팁을 찾았다.

  • Mentor: 선망하는 누군가를 찾고 직접 연락해보라. 할 수 있다면 그와 교류하고 조언도 구해보라. 배우고자 찾아온 사람을 매정하게 내칠 사람은 많지 않다.
  • Read more: 좋은 책은 여러번 읽는다. 1회독 때는 정독하고 2회독 때는 1회독때 표시해두었던 주요 포인트만 읽으며 속독하고 3회독 때는 본인에게 제일 중요한 몇 부분만 읽는다. 대부분의 책은 일부분만 읽어도 될 정도의 가치를 갖는다. 따라서 엄청난 양의 책을 비교적 적은 시간을 들여 읽는다. 양이 쌓이고 정리가 되어가면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이 매우 향상될 것이고 그 뒤부터 더 현명하고 가치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 Be humble: 자만, 오만하지 않는다는 것은 인생, 세계, 사물, 사람에 대해 쉽게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는 것이고 이는 바꿔말하면 겸손하면서도 호기심이 있는 것이다. 그런 사람만이 오래 학습하고 오래 성장하여 인간 지식의 미개척 영역을 한톨 넓히는 사람이 된다. 내 의견이 아니라 역사가 그렇다. (낮은 자세를 취하는 것은 도덕이 아니라 이쯤 되면 과학인듯)
  • Persevere: Bill Gates도 스무살부터 서른살까지 거의 쉬지 않았다. 그만큼 집중할 것이 뚜렷했다는 것이고 그렇게 할 수 있으려면 인내해야 한다. 될때까지. 나(Lopez)는 내가 선망하는 기업가의 비서를 17번 찾아갔다.
  • Stoic: 정말 재밌는 미래를 꿈꾼다면 그걸 위해 준비하고 조금만 참자. 오늘의 즐거움을 살짝 양보하고 스스로를 단련한다. 뭐 그렇다고 즐거움을 다 버리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현재를 희생하면서까지 즐겨버리면 그만큼 성장해있을 미래는 없다. 성장에 관심이 없고 이대로만 행복하게 살고싶다면 현재를 마음껏 즐기자.

나를 믿는 것

그리고 나만의 생각을 키워나가는 것.

나만의 생각을 키워나가는 것은 답이 정해진 문제를 해결하는 나만의 방식일 수도 있고, 비구조적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는 나만의 방식일 수도 있고, 남들은 생각하지 못하거나 전통적인 생각의 방식에서 벗어나 비록 그것이 기존의 것과 충돌하더라도 나만의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남들이 절대 아니라고 해도 내가 확고하게 믿는 것이 있으려면, 그걸 갖고 강하게 밀고 나갈 수 있으려면 이러한 나만의 생각이 잘 진전되어 있어야 한다.

앞서 프론트 영역에서 개발을 시작해 머신러닝으로 영역을 넓혀간다고 했을때 ‘왜 굳이’라는 반응을 들었다고 소개했다. 만약 내가 그리는 미래가 분명치 않았다면, 내가 한번 주어진 인생에 무얼 하다 갈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지 구체적으로 상상해보고 정해놓지 않았다면 나는 분명히 흔들렸을 것이다. 왜? 남들의 기준, 사회의 일반적인 기준에 따르면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은 전도유망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관점으로는 머신러닝을 처음 시작했으면 했지 굳이 프론트로 이미 시간을 보낸 뒤 진입하는 것은 그리 큰 메리트가 없었을 것이다. 동의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는 다행히 여기서 나를 믿고 나만의 생각을 키워온 것에서 큰 힘과 방향을 얻었다. 어쩌면 이것은 인생을 대하는 나의 태도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이 태도를 얻으려 부지런히 노력했다. 얻기까지 너무 힘들었고 좌절했던 적도 많았다. 그래서 그 얻은 힘과 방향이 무엇인고 하니, 머신러닝은 모델링 및 학습보다 데이터 전처리 및 가공에 더 많은 힘을 쏟아야 하는 성질의 분야이고, 내가 시작한 분야인 프론트 영역에서는 무엇을 데이터로 간주하고, 언제 어떻게 저장하고 가져올지 생각해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둘 간의 연결지점을 분명히 생각해볼 수 있었다. 자연스레 학습할 분야도 데이터와 관련된 분야로 옮아갔고 나는 미래를 더 분명히 그려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몇달전 읽은 Airbnb 스토리라는 책에 이런 내용이 있다. ‘이렇다, 저렇다 식의 남 얘기에 집중하지 마라. 나만의 생각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Warren Buffett이 한 말이다. 그는 출근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독서하는데 사용했다고 한다. 분명 사회에는 노이즈가 많다. 듣기 싫은 것도 있고 뭐만 하려고 하면 안된다고 초를 치는, 하등 도움이 안되는 말들도 많다. 그래서 흔들리지 않고 내 길을 올곧게 오래 나아가기 위해서는 남의 이야기에 경청할 줄도 알아야 하지만 반대로 듣지 않아야 할때도 있음을 깨달았다. 둘이 상충하는 것 같지만 자동차의 기어에 D와 R이 공존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경청과 무시. 둘 중 아무래도 그간 사회가 이야기해온 것에 따르면 경청이 더 좋은 자세 같다. 경청만 해야할 것 같다. 그렇다고 차에 D만 있으면 막다른 길에서 빠져나올 길이 없을 것이다. 앞만 보고 달리는 것만큼 바보같은 것이 또 없다.

뭔가 하고싶은데 남이, 사회가 그걸 두고 별로라고 하는가? 본인이 봐도 별로라고 생각이 들면 안하는게 맞지만, 분명히 좋다고 생각한다면 기쁘게 남을 무시하자. 한국 사회는 지나치게 남에게 관심이 많다. 예의있게 무시하고 오래 성장하고 전진해서 멋지게 살자.

정리하며

이제 막 커리어를 계획하고 다듬어나가는 입장에서 보면 앞날이 까마득하고 배울 것은 왜이리 많은지 답답하기만 하다. 이걸 다 언제하지 라는 조바심도 나고 이렇게 해서 정말 내가 원하는 레벨의 엔지니어가 될 수 있을지도 의심스럽다.

이럴때 상상력을 적극 활용해보자. 영화를 보다보면 온갖 일을 겪고 은퇴해 노년기를 보내며 지난 날을 회상하는 장면이 간혹 나온다. 이런 장면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아무리 치열하고 앞이 안보이고 어쩌고 해도 삶의 끝에 가면 결국 남는 것은 돈도 명예도 아닌 곁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그렇지 않은가? 치열하게 살아온 젊은 나날들이 무의미하다는 것이 아니라 중요하고 어려워 보이는 모든 것들도 끝에 가서는 아련함, 시원섭섭함, 아름다움, 그리움으로 남는다는 것이다.

아마 사람들이 꿈을 갖고, 무언가를 만들고, 고군분투하는 모든 것의 존재 이유는 진행하는 당시에는 모르겠지만 그저 그것이 재밌어서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아름다워서일 것이다. 편리, 재미, 환경을 위한 모든 일과 사업들. 당시엔 사명감, 욕심 등 여러 이유를 갖고 그것에 따라 생각하고 무언가를 해나가겠지만 끝에가서 남는 것은 추상적 감정들일 것이다. 그러니 지금 하는 것이 어렵고 힘들고 앞이 보이지 않아도 풀어나갈 한가지의 실마리만 있다면 그걸 쥐고 하나씩 알아나가는 과정들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즐기면 되지 않을까.

이 글을 쓰기까지 도움이 된 책들, 써온 글조각들, 만들어온 것들, 공부한 흔적들

img_4114

img_4134
1만 시간의 재발견: 2018년에 읽은 최고의 책(아직까지는)

img_4136

img_4118
Surely You’re Joking, Mr. Feynman!: 학습에 대해 유쾌하게 풀어내는 파인만의 재밌는 사연들이 감명 깊었다. 리처드 파인만은 정말 사랑스러운 과학자다.
img_4140
이 글의 바탕이 되는 첫 의식의 흐름
img_4054
심적 표상에 대한 정리
img_4141
이글과 연관이 있는 그간 써온 학습에 관련된 글조각들: 이 조각들은 이 글을 구성하는데 쓰였다.
스크린샷 2018-03-11 오후 5.39.34
입사하고 참여한 프로젝트의 결과물(React.js): dcode 앱의 웹 버전인 itsdcode
스크린샷 2018-03-11 오후 5.37.54
ML 분야의 hello world: tensorflow로 mnist 학습시키기

img_4138img_4139img_4137

KakaoTalk_2017-12-31-16-28-51_Photo_6
작년에 들었던 Coursera Stanford Machine Learning Course

KakaoTalk_2017-12-31-13-58-06_Photo_38

옷, 개인 그리고 패션테크 스타트업

얼마전 김정운 작가의 Editology를 읽었을때 책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공간의 형태에 따라 생각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facebook new building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그래서 위 사진과 같이 Facebook도 자신들의 미션에 따라 새로운 공간에서 일하기 시작했는데 사방이 탁 트이고 천장도 매우 높은 공간이다. 그럼 그들의 미션이 뭐길래 탁 트인 공간에서 일하기를 원했을까? 이미 Zuckerberg가 Y Combinator에서 언급해 많이 유명해진 그들의 미션은 사람들을 더 연결시키는 것이다. 이런 미션에 따라 일하는 것이 업무 공간과 어떤 연관성을 갖는지 생각하기 전에 먼저 이 미션에 따라 일한다면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게 될지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 좋겠다. 그래서 아래와 같은 질문들을 떠올려봤다.

  • 전세계의 사람들을 연결시키고자 하는 이들은 일을 할때 생각이 어떻게 흐를까?
  • 한 국가에 한정된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들의 사고 흐름과 비슷할까?
  • Facebook의 엔지니어들은 엔지니어링 부서 이외에 어떤 팀들과 소통을 얼마나 자주하고 어떤 과정으로 기능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어 설계하고 만들까?
  • 그럼 마케팅팀 직원들은?
  • 디자인팀 직원들은?
  • CEO와 경영진은?
  • 이 몇만명의 직원들이 어떻게 미션과 가치를 서로 공유하고 그에 따라 태스크를 구상할까?

질문을 하면서 답변이 동시에 저절로 나오는 걸 느꼈다. 국가, 종교, 문화, 기후, 언어, 인종 그리고 가치관이 서로 다른 사람들을 연결 시키려면 그에 걸맞는 서비스가 필요할 것이고 그 서비스를 이루기 위한 기능과 디자인이 필요할 것이다. 누구를 대상으로 어떤 서비스를 하느냐는 그 회사의 정체성을 나타낼 것이고 그에 따라 팀들 간의 유기적 협업 방식도 달라질 것이다. 즉, 일의 목적에 따라 그에 적합한 업무 방식이 필요하게 될텐데 그 방식이 회사 곳곳에 잘 정착되기 위한 문화나 공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런 서비스를 하는 회사의 업무 공간이 팀별로 지나치게 구분되어 있거나 넓은 회의실이 몇 군데 없고 건물 곳곳에 배치되어 있지 않으면 팀들이 서로 협업하기 어렵지 않을까?

위에서 든 예는 업무 형태에 따라 적합한 공간 형태를 생각하는 순서였지만 반대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자연을 벗삼아 사는 사람과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선 도시에 사는 사람의 사고 방식과 흐름이 전혀 다른 것처럼 업무 공간의 형태에 따라 같은 일을 하더라도 사고의 방식과 흐름에서 차이가 생길 것이다. 물론 업무에 적합한 공간에서 일하지 못한다고 해서 생산성이 급격하게 낮아지거나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디까지나 공간까지 생각하는 것은 생산성을 최대한 끌어올리고 자신들의 미션과 문화에 맞는, 직원들을 한껏 고무시킬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데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98%에서 99%로 나가기 위함일 것이기 때문이다.

 


 

서론이 참 길었는데 패션테크 스타트업에서 일하면서 옷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내가 좋아하는 옷을 입은 날은 집을 나설때부터 다르다. 아침에 하는 생각의 내용도 조금 달라진다. 오늘 있을 일을 생각하고 누굴 만나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까지 생각이 이어진다. 뭘 입을지 생각이 안나 대충 입은 날은 종일 찝찝하다. 옷에도 생각이 반영되지만 어떤 옷을 입느냐도 생각에 영향을 미친다.

옷은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심지어 옷을 구경하면서 이건 어떨까, 저건 어떨까 생각해보고 입다보면 내가 몰랐던 나의 모습을 알게 될 때가 있다. 전에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디자인이나 스타일의 옷을 입어보면 되게 어색하지만 ‘어 뭐지 이런 모습도 있었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직장인이 되고나서 이런 경험을 서너번 했다. 이쯤 되니 사실 패션은 자기이해를 필요로 하는 자기표현인 거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다.

패션은 자신을 찾아가는 길이다.

그래서 패션테크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패션을 자기이해의 수단으로 보는 관점이 사회에 얼마나 만연한가가 패션 사업성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그 관계성에 대해서 다뤄보고 싶어졌다.

Fashion – 너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니?

나는 나에 대해서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정확히 말할 수 있다. 나는 아직도 나를 잘 모른다. 아직 찾지 못한 부분이 많다. 물론, 아는 범위 안에서는 누구보다 나를 더 잘 안다. 하지만 모르는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고 인생은 어쩌면 자기를 찾고 이해하는 자아성찰의 여행일지 모른다. 마틴 하이데거도 죽기 전까지 자신에 대해서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The Sartorialist – 사진으로 가득 채워진 이 책은 패션에 대해 그리고 패션이라는 창으로 새로운 나를 보게 해주었다.

 

아마존 베스트셀러 중에 The Sartorialist라는 책이 있다. www.thesartorialist.com 라는 사이트의 도서 버전이다. 이 책은 텍스트가 반도 안된다. 전체가 인물사진이고 모두들 완전히 다른 옷을 입고 있다. 한명 한명 사진을 보면서 ‘내가 저 옷을 입고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라며 계속 나를 대입시켜 보았다. 찌릿찌릿 했다. 어떨때는 부끄럽기도 했고 어떨때는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다. 단순히 멋진 옷을 자기만의 스타일로 입은 사람의 사진을 보았을 뿐인데 나는 거기서 오히려 나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심지어는 가까운 미래에 어떤 커리어를 쌓으면서 어떤 옷을 입고 일을 하고 싶은지, 어떤 옷을 입고 회의에 참석하고, 연단에 올라 발표하고 싶은지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물론 지금은 너덜하게 막 입고 다닌다..

sartorialist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sartorialist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sartorialist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sartorialist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관련 이미지

사토리얼리스트에 있는 사진들이다. 요새 너무 formal하지 않은 정장에 관심이 많아서 이런 사진들을 가져왔다. 아.. 저 일본 아저씨들 너무 멋있다. 이 사진들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드는가? 그냥 저런 옷을 입은 외국인에 불과한가? 아니면 ‘내가 저 옷을 입고 출근을 하면 어떤 기분일까’ 라며 자신을 대입시켜 보고 상상해보았는가?

나는 단순히 옷을 입은 사람을 본 것이 아니었다. 패션 도서를 읽은 것이 아니었다. 나는 패션이라는 도구를 접함으로써 자기이해의 과정을 걷고 있었던 것이다. 몇년전의 내가 이 문장을, 이런 생각을 보고 엿듣게 된다면 코웃음을 쳤을 것 같다. 그런데 한번 관심을 갖게 되니 안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이 분야의 사람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도 모르던 나의 모습과 내가 어떤 모습이길 바라는가에 대해서도 서서히 알아가기 시작했다. 책을 읽고 여행을 떠나 모르던 곳을 탐방하고 새로운 모임에 나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는 것만이 자기성찰의 방법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를 알아가는 새로운 루트를 찾은 것이었다. 옷을 통해서 나와 주변 그리고 우리를 감싼 문화 전반에 대해서 새로운 관점으로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문화에 따라, 오늘의 느낌에 따라, 충동에 따라, 만날 사람에 따라, 나갈 모임에 따라, 생각에 따라 옷을 골라 갖춰 입는 것은 그저 옷을 집어 걸치는 행위가 아닌, 충분한 자기이해를 바탕으로 한 자기표현의 행위인 것이다.

혹자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나는 옷을 잘 입는데 그렇게까지 나에 대해 이해하면서 옷을 입지는 않는데?’ 어디까지나 자기이해는 메타인지의 영역이다. 옷을 잘 입는다고 꼭 자기이해가 수반 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옷을 잘 입고 싶은 그 이유를 내 안에서 찾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자기이해가 시작된다. 나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느끼고 반응하는지에 대해 알아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옷을 잘 입지 못한다고해서  자기이해가 덜 된 것도 아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패션은 자기이해와 자기표현에 이르는 하나의 길이기 때문이다. 내가 과도가 없다고 사과를 못깎아 먹는 것은 아닌 것처럼 말이다. 과도 없어서 못깎아 먹으면 인생에 대해서 한번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사업성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고 나니, 패션테크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사업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로는 패션은 개인의 취향과 생각, 가치관에만 그 영향이 국한되어 있지 않다. 사회와 문화에도 관련이 있고 둘은 서로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 받는다. 개인이 사회에서 갖는 역할을 중요시하는 문화에서는(성숙한 문화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활동을 하며 계속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선진국에 작가와 블로그 문화(like WordPress and Medium)가 잘 발달되어 있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자신이 경험한 것과 알게된 것에 대해서 서로 공유한다. 도대체 이게 패션의 사업성과 무슨 연관성이 있단 말인가?

이 부분이 아주 중요하다. 옷은, 패션은 그냥 옷 걸치는 것이 아니다. 개인 문화가 성숙한 사회에서는 개개인이 스스로의 인생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높고 자신의 취향 또한 분명(확고)해질 수 밖에 없다. 자신이 뭘 원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 이해하고 있는 개인들이 매우 다양하게 그리고 많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이것이 옷으로 옮겨가면 앞서 이야기했던 다양한 상황 속에서 자신이 어떻게 보여지고 싶은지 즉, 어떤 옷을 입어 자신을 나타내고 싶은지로 연결된다. 당연히 이런 곳에서, 이런 개인이 많은 곳에서 다양한 옷이 더 자주, 더 많이 팔리지 않을까? 옷에 정말 개미 코딱지 만큼도 관심없는 사람을 붙잡고 옷이 이래요, 추천이 어째요, 감성이 오져요라며 백날 설명하고 광고해도 통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그런 개인이 많은 지역 혹은 국가일 수록 더 그럴 것이다. 물론, 아직은 옷에 관심이 없지만 이제 천천히 알아가고자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듯 경우의 수는 매우 다양할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여러 카테고리에 속한 사람의 수는 많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카테고리들이 주류를 이루는가에 대해 알아내는 것이지 않을까?

이미지 검색결과
The Millennials – X 세대의 뒤를 잇는 밀레니얼 세대

 

airbnb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Airbnb는 사업이 궤도에 오른 후 시인했다. 자신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밀레니얼 세대였다고. 밀레니얼 세대는 디지털에 익숙하고 자금이 그리 넉넉치 않지만 여행을 떠나기 좋아하며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나가는데에 거리낌이 없는 세대다. 앞서 설명한 내용에 비추어보면 이 세대는 자기이해의 여정을 달가워하고 즐기는 세대인 것이다. 초창기의 Airbnb는, 현재도 그러하지만, 이 세대가 견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의 집에 모르는 사람을 들여 숙박하게 한다? 새로움과 창의성이 샘솟는 실리콘 밸리에서도 Airbnb의 이런 아이디어는 철저히 무시당했다. 그러나 그들의 사업과 아이디어는 돈이 궁핍하지만 전세계로 여행하길 원하는 밀레니얼 세대에 의해 처음으로 환영받았고 지지 받았다. 그렇게 사업이 성장하기 시작했고 안정화 되어갔다. Airbnb가 이후 어떤 고난과 역경을 딛고 지금에 이르렀는지는 The Airbnb Story라는 책이 아주 잘 설명해 놓았다.

다시 패션으로 돌아와, 이 Airbnb의 이야기를 패션에 적용해보면, 현재 우리가 시장으로 삼고 있는 사회에 속한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알아보는 것이 필요해진다. 물론 Airbnb는 사업을 시작할때 밀레니얼 세대는 생각조차 안했지만 말이다. 적어도 서비스를 제공할 대상에 대해 알아본다면 사업을 진행하고 전략을 수립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우리가 만들 서비스를 쓸 사람들에 대해 알아보기 위한 질문들을 아래와 같이 생각해보았다.

  • 이들은 어떤 사람일까?
  • 자신에 대해 알기를 꺼려하지는 않을까? 그럴 준비는 되었을까?
  • 아직 그 정도로 문화가 성숙하지는 못하지 않았을까?
  • 2, 3, 4, 50대 각각은 어떤 생활 양식으로 대변될 수 있을까?
  • 지금 그들의 상황은 어떠한가?
  • 앞으로 더 잘 벌 수 있으리라는 분위기가 사회에 만연한가?
  • 이들은 미래를 낙관하는가? 아니면 반대인가? 그에 대한 이유는?
  • 이들은 여행하기를 좋아하는가?
  • 이들이 명품에 대해 또는 어떤 브랜드에 대해 어떤 인상을 갖고 있을까?
  • 또 그 인상의 강도는 강한가? 혹은 약한가?
  • 강하다면 어느 방향으로 강하고, 그 방향이 우리가 알리려는 방향과 다르다면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 이해시키는데에는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까? 그 시간을 우리가 견뎌낼 수 있을까?
  • 거부감이 들지 않도록 바꾸고 이해시키려면 어떤 마케팅과 홍보 전략을 어떤 스텝으로 수립하고 실행해야 할까?

타겟을 이해하고 좁혀 사업을 진행하는 것은 중요할 것이다. 그런데 그 타겟이 속한 사회와 이를 대변하는 개인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위와 같은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뭘 어떻게 좁힐지 정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까? 적어도, 위와 같은 질문 및 이해가 뒷받침 된다면 좀 더 수월하게 사업을 진행하고 여러 전략들도 시장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수립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 이해를 바탕으로 또 다시 아래와 같은 질문을 해볼 수 있다.

  • 우리가 제공하려는 패션 서비스의 가치가 무엇인가?
  • 그 가치가 소비자 주류에게 얼마나 다가갈까?
  •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면 그 이유가 성숙한 개인 문화의 부재 때문은 아닐까?
  • 다른 이유가 있다면 개별적인 영향은 얼마나 될까?
  • 현재 소비자 카테고리는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
  • 각각에 대한 상황은?

지금까지 패션이 개인의 자기이해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그리고 그 관련성이 패션 서비스를 만드는 관점에서 어떻게 사업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살펴보았다.

자기이해의 관점에서만 보면 우리는 음악을 들으면서, 옷을 사고 입으면서, 여행을 하며 새로운 곳에 가보면서,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서, 새로운 언어로 소통하면서 끝없이 자기이해의 과정을 걷는다. 나는 이 각각이 서로 분리되어 있다고 믿지 않는다. 아직은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에 의해 이 연결고리들이 군데군데 끊어져있다. 남자가 화장을 하네, 여자가 저런 옷을 입네, 저 사람은 저런데를 가네.. 등 온갖 편견들이 도사리고 있다. 이 편견들이 자취를 감출때, 모든 개인이 각자의 성향과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 존중을 받을때 개인들의 활동은 더욱 다양해지고 풍성해질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을때 옷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 또한 훨씬 더 다양하고 많이 생길 것이라 생각한다. 그때 우리 서비스는 사람들이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을 돕는 건강한 서비스로서 더 큰 성장을 할 수 있을거라 믿는다.

Jeff Bezos, founder of Amazon 그리고 삶

이 글은 조성문님의 아마존(Amazon) 성공의 비결은 소비자 경험 개선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 포스팅에 영향을 받아 작성 했으며 발췌한 내용으로 시작합니다. (출처를 시작 부분에서 밝히는 이유는 제 글만 읽어도 괜찮지만 이 글을 먼저 읽고 제 글을 읽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서..!)

올해 47세의 아마존 CEO 제프 베조스, 2010년에 모교인 프린스턴 대학에서 졸업생을 대상으로 연설을 했다. 6분 25초 지점부터 그의 연설이 시작된다. 10살 때 할아버지에게 어떻게 해서 “It’s harder to be kind than clever (똑똑한 것보다 친절한 것이 더 어렵다)는 원칙을 배우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계기로 뉴욕의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아마존을 창업하게 되었는지, 어떤 기분으로 어려운 선택을 내렸는지 등을 설명한다. 연설 중 마지막 대목을 인용하며 이 글을 마친다.

와이프에게 아이디어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녀는 하라고 했어요. 그래서 당시 내가 존경하던 상사에게 가서 이야기했습니다. 인터넷으로 책을 팔고 싶다구요. 센트럴 파크를 한참 걸으면서 주의 깊게 이야기를 듣던 그가 말했습니다. “That sounds like a really good idea, but would be even BETTER idea for someone who already didn’t have a good job. (그거 참 멋진 아이디어군, 근데 이미 좋은 직업이 없는 사람에게 더 좋은 아이디어일텐데..)” 그리고 48시간동안 생각해보라고 했습니다. 어려운 선택이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시도해보기로 했습니다. 시도조차 해보지 않는 것은 싫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열정을 따르기 위해 가장 안전하지 않은 선택을 한 셈이지만, 저는 그 선택이 자랑스럽습니다. (중략) 시간이 지나 당신이 80세가 되었다고 생각해보세요. 조용한 방에 혼자 있습니다.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혼자 이야기해본다고 생각해보세요. 가장 간결하고 의미있는 이야기는, 결국 당신이 했던 선택들을 나열하는 것일겁니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한 선택 그 자체입니다 (In the end, we are our choices).

자기 자신에게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주세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행운을 빕니다. (Build yourself a great story. Thank you, and good luck.)

가장 인상적인, 가장 뇌에 충격을 준 부분을 파란색으로 표시했다.

살면서 겪어온 경험들과 공부해온 지식은 내게 ‘인간이란 그리 단순하지 않은 존재’ 라고 알려주었다. 이 글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런데 정작 생의 말미에 가면 우린 우리가 한 선택들의 단순한 나열 혹은 그 집합 자체라니. 단순한 배열 조차 거대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생각해보면 나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의 경험과 행동, 생각, 선택들은 단순한 데이터의 집합으로 표현될 수 있다. 그런데 개개인의 사연을, 인생을 들여다보면 모든 것엔 크고 작은 의미가 깃들어 있다. 그곳에 모든 희로애락이 있다. 그만큼 인간은 고유한 존재다.

Bezos에게 Amazon은 그의 선택들의 나열이 만든 가장 큰 결과물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Amazon이 있기 전, 그는 선택들의 나열이 중대한 방향 전환을 맞게 할 중요한 선택 하나를 했다. 자신의 마음을, 열정을 따르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렇게 그는 자신에게 의미있는 선택을 했다. 남들이, 사회가 말하는 ‘risk’에 귀기울이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을 살아있게 할 선택을 했다.

이런 멋진 이야기들을 여럿 접하면서 내게 요상한 이분법적인 질문이 하나 떠올랐다.

“무미건조한 인생 그리고 흥미로운 인생, 둘 중 어떤 인생을 택할 것인가?”

어떤 인생을 살지는 전적으로 나의 선택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믿고 있다. 훗날, 선택에 방해가 되는 여러 문제들이나 상황에 핑계를 대가며 이렇게 살 수 밖에 없었다고 한숨섞인 말을 하기엔 단 한번의 인생은 너무나 소중하다. 그리고 시간은 자비없이 흐른다. 마음을 따르지 않은 선택을 하고 시간이 흐르면 그 뒤엔 후회만 남을 뿐이다. 즉, 냉철한 시간 앞에 나의 선택과 그 과정에서 나오는 결과만이 있을 뿐이다. 그 결과가 자신에게 의미가 있을지 없을지는 그 선택의 동기가 내부의 것인지(마음을 따랐는지) 혹은 외부의 것인지(타인, 사회의 훈수를 따랐는지)에 따라 결정될 터. 결국 인생을 바꾸고자 한다면 그 유일한 수단은 자신의 마음과 선택이다. 매일매일 어떤 선택을 얼마나 신중을 기해야 하는지 혹은 대충 하는지 뒤돌아 본다면 어느 정도 자신의 미래를 점칠 수 있지 않을까.

아직 위 질문에 답을 하지 않았다. 다시 물어본다. “난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가?” 힘들겠지만 후자를 택할 것이다. 단순히 wording만 보자면 혹자는 “아니 무슨 누군들 흥미로운 삶을 살고 싶지 않겠나?” 라고 물을 수 있지만 이면엔 사실 무서우리만치 냉정한 현실과 시간이 존재하고 있다. 진짜 흥미로운 인생을 택하지 않는다면, 대충 결정지은 선택들로 점철된 삶을 살고 있다면 삶의 끝으로 가면 갈 수록.. 단조로움만이 자리할 것이다. 물론 그런 삶이 꼭 나쁘다는 건 아니다!

그럼 흥미로운 삶을 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기엔 딱히 방법이랄 만한 것이 없다고 본다. 질문이 단순한 만큼 답변도 단순하다. 그저 나 자신이 긍정적이고 흥미로운 사람이어야 한다. 딱히 그렇지 않으면 그렇게 되길 추구해야 한다. 그것이 방법이라면 방법이다. 멋진 이야기들의 주인공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런 삶을 살기 위해선 새로운 것을 생각하고, 새로운 상상을 하고, 새로운 일을 하고, 새로운 도전을 해야한다. 이렇게 새로운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이 모든 과정을 즐겨야 한다. 이때 변해가는 나 자신도 사랑해야 한다(나는 요새 어떤 새로운 생각을, 상상을, 도전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하려는지에 대해선 다른 글을 통해 다루려고 한다!).

Bezos의 일화와 연설을 본 뒤 Jobs의 말이 뒤섞이며 머릿속에 한 문장이 떠올랐다.

새로운 경험과 일에 대한 선택들(dots)이 모여 Story를 만들고 논리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관련없어 보이는 선택의 배열이 우리의 인생을 점점 더 흥미로운 인생으로 바꾸어 놓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