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에서 난 무엇을 배웠나

이 회사에서 난 무엇을 배웠나. 그리고 스타트업으로 오기까지 난 무엇을 했나!

지난 2년을 정리하고 되돌아볼 때가 왔다. 그 2년을 크게 3 부분으로 나눠볼 수 있겠다.

  • 회사에 입사했고
  • 퇴사를 했고
  • 회사에 입사했다

2015년 2월 졸업을 하고 회사가 뭔지, 일이란게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같은 해 7월 1일, SK C&C에 입사했다. 그리고 정확히 15개월 뒤인 2016년 9월 30일에 퇴사를 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나날들이다.😨 너무 많은 변화가 짧은 기간에 일어나 무슨 일이 일어날 때마다 적절한 대처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부딪치고 헤맨, 고된 학습의 시간이었다. 컴퓨터공학엔 관심을 가진지 2년도 안되는, 그저 철학 서적을 탐독하던 스물다섯 새파란 rookie였으니 옆구리만 찔러도 놀라고 뭘 갖다줘도 모든게 새로운 때였다. 물론 지금도 공부할 게 산더미다(..).

그래서 무얼 배웠나?

이것도 아래와 같이 크게 세가지로 나눠볼 수 있겠다.

  • 조직이 어떻게 구성되고 업무가 어떻게 부여되는가
  • 조직 문화가 갖는 회사에서의 역할
  • How to communicate efficiently!

조직, the organism constantly moving forward

팀에 부서 배치를 받고 사무실에 처음 들어간 날을 잊을 수 없다. 오우 이게 회사구나. 그렇게 첫 여섯달을 배우고 일하면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이 정도 규모의 큰 조직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그 구조에 따라 개인에게 업무가 어떤 형태와 과정으로 부여되는가였다. 물론 신입사원의 눈으로 보는 것이었기에 많은 것을 다 파악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그럼에도 그 구조를 알아보려 부단히 노력했다.

가장 중요해 보였던 것은 사업부다. 사업부란 말 그대로 어떤 회사가 생존하고 성장하기 위해 중점적으로 일으키고 있는 모든 경제적 행위들을 실행하는 세부 조직의 집합이다. 그리고 이것을 중심으로 사업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세부 조직이 구성되고, 이 조직이 원활히 운영되기 위해 필요한 인적, 물적, 문화적 자원을 관리 및 배분하고 경영에 관련한 변경 사항이나 공지할 사항을 전 조직에 알리는 역할을 하는 지원 조직이 구성된다. 단순히 구분하자면 Running / Support로 나눌 수 있겠다. 이 Support 조직을 회사마다 다르게 부르고 구성한다. 이중에 인적 자원에 집중하는 조직을 대표적으로 부르는 이름이 HR 일테다. 그리고 돈을 벌어다주는 영업 조직. 사업의 형태와 성격에 따라 팀으로 있을 수도 있고 Running 조직의 부분으로 존재할 수도 있다. 그 다음으로 회사의 규모, 재정 상태 혹은 종류에 따라 부가적으로 생기는 조직들 중 하나가 R&D다. 이 연구개발 조직 또한 사업의 특성에 따라 완전히 독립적인 형태로 존재할 수도 있고 각 사업부마다 귀속된 형태로 있을 수도 있다.

이쯤 파악하고 나서 든 생각은 회사는 완전한 유기체라는 것이다. 가장 기본이 되는 단위 조직이 마치 움직이는 레고 같았다. 위 단락에서 본 바와 같이 어느 것 하나 글로벌하게 정해진 틀이 없다. 어떤 사업을 하느냐에 따라 Support 조직의 규모가 클 수도, 작을 수도 있고 R&D 조직이 독립적일 수도 있고 특정 사업부에만 존재할 수도 있다. 회사의 가치, 사업의 형태에 따라 이 레고들은 유기적으로 배치되고 조립된다. 더 높은 차원에서 이야기하면, 당연히 회사 또한 국가와 국제사회라는 더 큰 조직의 세부 조직이므로 회사의 레고들은 사회-회사에 걸쳐 이중으로 영향을 받는 셈이다. 이렇게 이중적 영향을 받아 생기고 있는 대표적인 레고 중 하나가 AI branch다. 애초에 회사의 사업을 구성할 때 AI 및 Machine Learning은 고려조차 하지 않았지만 시대적 흐름을 무시할 수 없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즉, 처음부터 ML로 돈을 벌기 위해 설립된 회사가 아닌데 회사 내에 ML related 팀이 있다면 그 레고는 이중적 영향을 받은 것이다.

나이 서른, 늦더라도 마흔에 북미권에서 스타트업을 꼭 만들고 싶은 나로서는 조직을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가에 대해 알아볼 수 있었던 소중한 배움들이었다. 조직에 대해 한 문장으로 정리해보면, 조직은 실행하려는 사업의 특성과 형태에 따라 적절히 구성하고 회사의 핵심 가치에 따라 끊임없이 개선 및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사업의 특성에 맞지 않게 Support 조직이 비정상적으로 비대하거나, Running 조직들 간의 조립 이음새가 시원찮거나, 외부의 흐름에 따라 유기적으로 조직 구성의 변화를 꾀하지 못한다거나, 조직의 구성이 사업의 특성에 맞지 않는다거나 하여 레고들이 잘 조립되어 굴러가지 않는다면 회사는 언젠가 삐걱거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직 문화의 역할과 중요성

다음에 배운 것이 조직 문화이다. 이것의 결핍을 회사에서 많이 느꼈기 때문에 그 필요성과 중요함이 매우 크게 다가왔다. 조직 문화는 실체가 없다. 그래서 만질 수도 없고 누군가에게 ‘여기 있어요~’ 라며 건네줄 수도 없다. 다만, peer colleague들이 서로를 어떻게 대하고 소통하는지, 서로 다른 직급에서는 어떻게 소통이 이루어지는지, 구성원들이 서로를 어떻게 부르는지, 구성원들이 회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경영진과 모든 구성원이 회사의 Service로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주고싶은지, 경영에 관한 중대한 결정을 할때 구성원들이 어떻게 참여하고 의견을 내는지, 한 가지 사안에 대해 다같이 참여해야할 상황에 회의를 어떤 가치에 따라 진행하는지, 그 방식은 어떤지 등 회사 내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행위에 추상적으로 깃들어있다.

만질 수 없고 보이지 않아서 쉽게 간과되고 무시될 수 있다.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보이지 않지만 회사 구석구석 모든 곳에 존재하고 그 영향을 끊임없이 끼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하려는 일은 이러한 거에요. 이 일을 통해 이런 가치를 만들고 있어요. 우리는 이런 일을 하기 때문에 서로를 이렇게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일대일, 다대다 소통을 할때는 이런 방향으로 하길 원해요. 그 방식이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를 더욱 풍성하게 하고 서비스를 더 좋게 만들 것이라 믿어요.’ 라는 식의 정언적 문장들이 지속적으로 갈고 닦아져야 하며 구성원들 또한 그것을 좋아하고 그것에 깊이 공명하고 그것에 따라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회사를 구성하는 아주 작은 개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치고 이는 곧 사업의 질과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뚜렷한 조직 문화가 없다고 해서 제품 혹은 서비스가 꼭 안좋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저 좋은 제품이 아닌, 사랑받는 제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회사를 보면 하나같이 좋은 조직 문화를 갖고 있고 그것을 끊임없이 개선시키고 있다. 여기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문화가 좋으면 사내에 선순환적인 고리가 생길 것 같은 직감을 꾸준히 받는다.

소통이 뭐에요? 😲

그 다음은 소통. 가끔 인스타를 하다보면 누군가가 내 사진에 좋아요를 누르고 ‘잘 봤어요. 소통해요~’ 라며 댓글을 다는 것을 심심찮게 본다. 대체 난 저들과 무슨 소통을 해야한단 말인가.. 들어가보면 죄다 네일샵이다.. 이런 실체가 잘 와닿지 않는 소통을 회사에서도 적절히 잘 해야함을 느꼈다. 너무 당연한 말인가? 하지만 ‘잘’ 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그것도 회사에서는 더욱. 결론적으로 ‘커뮤니케이션에 능하다’ 를 먼저 정의하자면, ‘상대가 어떤 심정, 상태, 맥락에서 어떤 메세지를 전달하려는지 의도를 파악하고 경청한 뒤, 나의 메세지 또한 상대가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상대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다. 너무 조건이 많아 보이는가? 하지만 아주 필요한 것들로만 구성한 문장이다. 그만큼 잘 소통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살아보니 실제로 그렇고 이것의 결핍때문에 크고 작은 불상사를 겪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아주 많이 왕왕 봐왔다. 그래서 적어본다. 내가 겪은 소통이 참 어려웠던 불통 케이스들.

  1. 듣는 것 같긴 한데 말이 너무 없는 사람
  2. 듣지도 않고 말도 없는 사람(…)
  3. 잘 듣지도 않는데 자기 말이 너무 많은 사람
  4. 상대의 말을 아무렇지 않게 끊는 사람
  5. 듣기는 하는데 상대의 심정, 상태, 맥락 파악이 안되는 사람
  6. 말할 때 상대의 언어로 말하지 못하는 사람

모두 회사에서 만나면 골치아픈 건 매한가지인 사람들이다. 1, 2번은 매우 답답하고, 3번은 annoying하고, 4번은 매우 불쾌하며, 5, 6번은 안타깝다. 1~4번은 눈에 너무 띄기 때문에 웬만해선 주변에서 다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협동(?)하여 잘 대처할 수 있다. 5, 6번은 안타깝다고 했는데 이유는 다음과 같다. 먼저 5번은 정상적인 소통은 가능하나 상대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야기하지 못하기 때문에 메세지 전달력이 낮을 뿐더러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에는 십중팔구 실패한다. 상대의 심정을 알고 그의 말하는 전후 맥락을 파악하는 것이 어떻게 메세지 전달력과 설득력에 도움이 되냐고 묻는 사람이 더러 있다. 상대가 어떤 심정인지 알면 그에 맞춰 나의 말하는 stance를 정할 수 있다. 당연히 나의 stance에 따라 말하는 양태 또한 달라지고 이를 듣는 이도 느끼고 반응한다. 같은 내용의 메세지이더라도 어떤 방식과 형태를 취하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지고 듣는 이의 수용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래서 5번은 그 이해의 폭만 넓히면 괜찮은 소통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안타까운 것이다. 6번도 안타깝지만 조금은 답답한 케이스다. 가끔 자기 분야의 용어로 뒤범벅된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있다. 대화 중에 말이다. 모두가 같은 분야 사람이고 회의를 하는 경우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인 자리나 그런 개인과 소통할 때엔 문제가 된다. 듣는 이가 화자의 말에 공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듣는 이도 화자가 적어도 무슨 말을 하는지는 이해하지만 결론적으로 와닿지 않기 때문에 서로 좋은 소통을 하는 데엔 실패한다.

어디든 좋은 소통이 이루어지기 어려운 곳은 별로 있고 싶은 곳은 아니다. 좋은 소통이 되는 곳에 있으면 일과 대화에 완전히 몰입하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중하게 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그런 일이 잦으면 잦을 수록 직장 생활 뿐만 아니라 삶에 대한 만족도 또한 상승할 것이라 생각한다. 아니, 거의 그렇게 믿는다. 김정운 작가의 책을 읽다가 이런 구절을 본 적이 있다. 소통을 정말 잘하는 사람은 공감(sympathy), 감정이입(empathy)을 하고 나아가 공명(resonance)한다는 것이다. 정말 공감하는 바이다. 이 말은 앞서 설명한 ‘상대의 심정, 상태, 맥락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입사하기 전엔 이런 여러 종류의 불통러들을 회사 내에서 만났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1년 넘게 다니면서 이런 불통러들이 회사와 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골고루 보아왔다. 그래서 참 고맙고(?) 좋은 소통을 하기란 쉬운 것이 아니고 그것엔 자기 개선이 필수적으로 수반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시간들이었다.

무엇이 나를 퇴사로 이끌었는가?

대학교 2학년때 처음으로 꿈이 생겼다. 당시엔 ‘세계적인 엔지니어가 되어 세상에 무언가 도움이 되는 걸 만들고 싶다’ 라는 다소 추상적인 형태의 꿈이었다. 다행히 전에 쓴 글 나, 주체적으로 살고 있는 걸까? 에서 설명한 것처럼 이 추상적인 꿈은 현재 나의 가장 근원이 되는 꿈이 되어 지금도 길라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입사를 할때에도 이런 삶의 방향성에 입각해서 계획을 세워야 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개발 부서에 배치되면 최대 3년, 이외의 부서는 2년을 다니는 것으로 정했다. SI 회사였기 때문에 기간 산정이 저렇게 나왔고 대기업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을 최대한 습득하고 service를 만드는 개발을 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야만 최대 3년을 다녀도 스물여덟에 나와 다른 도전을 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입사하고 인프라 팀에서 일한지 13개월이 되었을 때 머릿속에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이 이상 더 머무를 이유가 없다는 생각. 때마침 고객사였던 SK Hynix의 책임님께서도 새로운 도전에 대해 이야기해주셨다. 그래서 퇴사한 것은 아니다.. 3년이 되었든, 2년이 되었든 퇴사를 해야할 시점에 적절히 퇴사할 수 있도록 입사를 한 시점부터 퇴근 후 개인 포트폴리오를 위한 공부와 개발을 하기 시작했다. 그 공부와 개발의 행적을 남기기 위해 Github에 프로젝트를 만들고 꾸준히 commit 했다. 별거 아니지만 그땐 그 별거아닌 것이 필요했고 중요했고 간절했다. 그렇게 하루 두시간씩 매일을 공부하고 15개월이 지나 적절한 때(?)에 퇴사할 수 있었다.

스타트업으로 오기까지

그럼 퇴사를 하고 스타트업으로 오기 전까지 난 무엇을 했는가? 퇴사하기 전 다음 행보를 밟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아래와 같은 목록이 나왔다.

  1. 국제적 커리어를 위해 세계를 좀 더 직접적으로 경험해볼 필요가 있다
  2. 당연히 이를 위해 영어가 더 세련될 필요가 있다
  3. 관심을 쏟기 시작한 Web Development를 위해 React.js와 같은 신기술을 공부하고 이것으로 개발해 볼 필요가 있다
  4. 이력서를 국문/영문으로 각기 다른 버전으로 잘 다듬을 필요가 있다

1번을 위해 호주에 가기로 결정했다. 캐나다는 교환학생때 경험했고 때마침 친한 친구가 Gold Coast 부근 Griffith University에서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그래서 오랜 친구를 만날 겸, 친구에게 호주 전반과 이민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겸, 직접 호주 IT 회사들을 살펴보고 문화를 경험해볼 겸, 다시 한번 방향 설정을 견고히 할 겸, 그간 못본 책을 마음 껏 볼 겸 그렇게 호주로 떠나 8주 넘게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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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시간이었다. 호주에서도 개발을 했고 책을 읽고 글을 썼다. 호주에도 IT 회사가 꽤 많고 Software Engineer가 꽤 괜찮은 것 같았다. 호주에서 캐나다 친구를 사귀게 되었는데 그 또한 Software Engineer였고 캐나다와 호주의 IT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해외의 IT 업계에 대해서 조금씩 감을 잡기 시작했다.

늦은 겨울, 귀국을 하고나서 본격적으로 React.js, Webpack, Redux, Node.js로 Web app을 만드는 프로젝트 두개를 만들어 멤버를 모집하고 시작했다. 영어는 TIME이나 논문을 읽고 쓰는데는 편했지만 네이티브와 자연스럽게 듣고 말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 회화 스터디를 시작했다. 그 무렵이 12월 말이었고 그렇게 넉달을 보냈다. 춥고 꽤나 고단스러운 시간이었으나 무엇보다 재밌었기 때문에 꾸준히 할 수 있었다. 이후 2주에 걸쳐 이력서를 다듬었고 여러 스타트업에 Wanted를 통해 지원하기 시작했다. 몇몇 한국 스타트업과 미국계 스타트업의 면접을 거치면서 어떤 회사에 가고 싶은지가 점점 명확해졌다. 미국계 스타트업은 면접을 영어로 5시간을 해서 실신할 뻔 했다.. 그렇게 d.code라는 앱을 서비스하고 있는 지금의 회사로 오게 되었고 좋은 배움의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여기까지가 지난 2년간 SK에서 배운 것들과 스타트업으로 오기까지의 여정이다. 지금 또한 추상적 목표에 따라 끊임없이 방향 설정을 하고 재밌게 개발 공부를 하고 있다. 이제 스물일곱, 앞으로 어떻게 삶이 펼쳐질지는 어느것도 예측할 수 없지만 적어도 새로움을 추구하고 끊임없이 도전하고 공부하는 이 방향 아래에서만 나아간다면 행복하고 성장하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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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례란 무엇인가

최근에 페이스북을 보다가 예의없는 사람에 대해 쓴 글을 보게 되었는데 간결하고, 관점이 재밌고 무엇보다 무릎을 치게 되는 시원함이 있어 그 글을 공유하고 내 생각을 얹어 글을 조금 확장해보고자 한다. 근래에 정의란 무엇인가(Michael Sandel), 죽음이란 무엇인가(Shelly Kagan), 국가란 무엇인가(유시민) 등 ‘~란 무엇인가’ 류의 책을 많이 읽어 제목을 따라해봤다(..).

아래는 신상철님의 글이다.

https://www.facebook.com/shinestory/posts/1279056888889466

결론은 딱 11자다. 예의 없는 사람은 멍청하다.

27년 밖에 살지 않은 내 인생에서도 별의별 이상한(..) 사람, 예의 없는 사람, 눈에 뻔히 보이게 남을 이용하려는 사람, 상대를 없는 사람 취급하는 사람 등 갖가지 종류의 사람들을 봐왔다. 내가 직접 겪은 것도 있고 목격한 것도 있다. 글 쓰면서 주마등처럼 그때의 기억들이 스쳐지나가고 있다. 지금 회사 입사 전에 했던 면접도 떠오르고 전 직장 사람들도 떠오른다. 후후.. 열이 오르네. 다 사람구실 하면서 살고는 있으려나 그게 제일 궁금하다.

거두절미 하고, 내심 어떻게 저런 인간들(?)이 세상에 존재하는가에 대해서 누군가 설명해주길 바랐다. ‘저런 사람들은 이러한 환경적, 문화적, 개인적, 사회적 요인에 의해 그런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갖게 되었으리라~’ 식의 해석이 필요했다. 그래야만 편안하고 안정된 마음으로(…) 앞으로도 있을 이런 상황에 잘 대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11자라니! 단지 멍청한 거였어?.. 단순히 정신승리적인 통쾌함 뿐만 아니라 간결하고 똑 부러지는 논리가 뒷받침하고 있기에 난 드디어 해석이라 할만한 걸 얻게 되었다. 그래서 이왕 이렇게 예의 없는 사람에 대해 논리적 해석을 득하게 된거 한번 더 깊게 생각해 보기로 했다. 지능과 정서 개념에서부터 시작해보자. 단순히 예의 없음은 지적 능력의 결함이 아닌 나쁜 정서에서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

분류하기 좋아하는 인류는 자연을 분해하고 분석하다가 언제부터인가 스스로를 이해하고자 자신을 분해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초기 심리학의 고군분투로 탄생한 것 중 하나가 인지능력과 정서의 분리이다. 상황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정서를 학문의 범주로 끼워맞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인간 마음에 대한 과학적 분석의 시도이므로 폄하할 생각도, 폄하할 위치도 아니지만 분리할 수 없는 걸 분리하려고 시도했다고 생각한다. 그 시도의 여파로 정말 우리 마음 어딘가에는 지능과 정서가 따로 움직인다고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 많다. 이걸 정말 분리할 수 있을까? 세상과 사람에 대해 좋은 마음 혹은 나쁜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 인지능력과 정말 서로 독립적일까?

단순한 예를 들어보자. 주어진 정보를 잘 분석하고, 편재되어 있는 정보들 사이에서 흐름과 패턴을 객관성있게 잘 읽어내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이런 사람은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 사람들, 나아가 사회가 어떻게 작동하고 흘러가는지를 마냥 지켜보고 흘려보내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언제나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 대해 합리적인 해석을 해야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상황을 잘 주시하고 있고 또 어느정도 이해도 하고 있다. 반대로 정보들 사이의 관계성과 흐름을 판단하지 못한다면, 다른 말로 인지능력이 부족하다면 전체를 보지 못해 객관성이 떨어지게 된다. 즉, 편견이 여러 부분에서 점점 심해지게 되고 이를 두고 ‘편협’하다고 한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이걸 현실의 예로 치환해보자. 근처의 사람만 봐도 객관성이 두드러지는 사람과 편협한 사람이 각각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이지 않는가? 편견이 심한 사람일 수록 어떤 사람을 대할 때에도 그 차이가 심해진다. 이런 사람은 어떤 사람이든 비슷하게 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을 대하는데에도 정보 분석이 동반된다. 가령,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어디 출신인가, 말하는 습관이 어떠한가, 어떤 옷을 입는가, 최근 무슨 일을 겪었는가 등등 사람에 따라 누군가를 대하기에 앞서 자신의 가치관을 바탕으로 수 많은 정보 분석과 가치 판단이 선행된다. 그래서 위의 편협한 사람은 객관적 분석 능력이 부족한 것이고 – 한쪽으로 치우쳐 생각하게 되는 경향이 심하고 – 누군가를 대할 때에도 합리적으로 대할 줄을 모르고 – 인지능력이 뒤떨어지는 것이다. 지금 대쉬(-)로 표현한 구절은 논리적으로 거의 동등한 것들이다. 그래서 이를 한마디로 바꿔 말하면, 편협은 인지능력의 결함으로 설명해낼 수 있다.

나 또한 이렇게 설명해놓고 보니 이 이론이 꽤나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은 것 같다. 신기한걸..? 여기까지 써놓고 보니 인지능력의 부조화가 심한 환자들이 편협성이 커지고 사회성이 급격히 후퇴한다는 내용의 책도 떠오른다. 그렇다. 편견이 심한 것은 인지능력이 뒤떨어지거나 의식적으로 정보를 선택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벌써 많은 정치인들이 떠오르는 것은 기분 탓만은 아닐 것이다(..).

다시 지능과 정서의 분리로 돌아와, 따라서 이 둘은 분리할 수도 없고 분리되어 있지도 않다. 다만 분리해서 생각은 해볼 수 있다. 분리하여 심리학적으로 논지를 전개해 나갈 수는 있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다. 인간 정신에 대한 설명과 해석의 한가지 관점을 추가시킨 것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를 상철님의 글처럼 실생활에 적용해보면, 예의가 실종된 사람, 자신보다 경제적, 육체적, 정신적, 지적으로 약해보이는 사람을 얕잡아보는 사람, 나아가 무시하는 사람, 함부로 대하고 하대하는 사람, 이용하려는 사람, 속이려는 사람 등 이 모든 카테고리의 사람들(인간들이라 하고 싶다)은 결론적으로 멍청하거나 알고는 있지만 연유야 어찌 되었든 의식적으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다. 어쨌거나 두가지 경우 모두 씁쓸하다..

그런데 여기서 혹자는 정말 철저하게 남을 속이고 이용하는 사람이 어쨌든 이득을 많이 보고 잘 살게 될 가능성이 크니까 더 똑똑한거 아니냐고 의구심을 품을 수 있다. 남을 쉽게 무시하고 할 말 못할 말 다 내뱉고 사는 사람이 마음 후련하게 사는 것이니 정신적으로도 더 편한 삶을 사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아니다. 그런 사람들은 시야가 좁은 것이고 편협한 것이다. 단기적으로 보면 맞을 수 있지만 결국 멀리 보면 그 방식은 실패한다. 행복한 삶도 아니다. 이제까지의 역사가 보여주듯 그런 사람들의 거의 전부는 말로가 좋지 못하다. 멍청하다는 거다. 멀리 보는 것도 지적 능력이다. 멍청하든 의도적으로 그렇게 살든 이래나 저래나 피곤한 삶이고 사랑받는 삶도 아니다.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은 방식이다..

위의 경우들을 수도 없이 본 선대의 사람들이 이것을 대상화시킨 개념이 바로 도덕과 윤리이다. 이 개념들이 괜히 나온게 아니다. 도덕이란 개념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를 찾아보면 상당 부분 이런 내용이다. ‘그냥 사람 좋게 사는게 좋은거지 암~’ 이러고 나온 개념이 아니란 거다. 그래서 타고난다고 생각했던 이 인성 혹은 도덕성을 ‘교육’하는 것이다. 마음의 태도와 인성 모두 지적 능력이라는 말이다. 좋은 마음과 예의 바름이 인생의 마지막까지 미칠 영향을 수도 없이 보고 집대성한 이 윤리를 그렇게 주변에서 보고 듣고 학교에서, 가정에서 교육받았음에도 그 이치를 깨닫지 못해 예의없이 행동하고 쉽게 남을 얕잡아보는 것은 멍청하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 Edward Wilson의 On Human Nature와 Richard Dawkins의 The Selfish Gene이라는 책을 보면 동물 세계에서도 ‘처음엔 남에게 좋게 대하기, 나에게 잘해주면 그 상대에게 잘 대하기, 나에게 해를 끼치면 무시하거나 되갚아주기’라는 소위 호혜주의 혹은 Tit for tat 전략이 가장 장래있는 생존 전략이다. 이 전략을 따르지 않은 개체 혹은 종은 종족 번식에 어려움을 겪는다. 심지어 이 호혜주의가 유전적 형질로 생기게 되었다는 이론도 있다. 동물도 안다는 거다 예의가 가져올 좋은 영향을. 이쯤되면 예의 없는 사람은 편협하고 지적능력이 떨어질 뿐더러 동물만도 못한 사람이 된다(…). 그렇다고 미안해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예의 없는 사람을 보면 어떡하란 말인가? 상철님의 말씀대로 무시하면 된다. 설득할 수도 없고, 싸울 수도 없고, 그렇다고 교화시킬 수도 없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해도 거기에 들일 시간과 노력, 에너지가 너무 아깝다. 그래서 정중히(?) 무시하고 할 일을 묵묵히 하면 된다.

이제 마무리지을 때가 왔다. 주변에 쉽게 고함지르고, 무시하고, 남을 얕잡아보는 사람이 있는가? 멍청한 거니까 무시하면 된다. 물론 ‘예의있고 나이스’하게 무시해야 한다. 그래야 지적이니까. 이제 예의없는 사람을 깨끗이 무시할 이론적 토대가 구색을 갖추었으니 실컷 무시하고 다니자. 아 정리가 잘 된 느낌이다!